필자는 음알못입니다. 잘못된 정보가 있으면 알려주면 감사하겠습니다.
오늘은 펑크와 디스코에 대해 다뤄볼 것이다. '디스코'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불빛이 반짝이는 댄스플로어와 미러볼, 사람들 한가운데에서 셔츠 차림에 나팔바지를 휘날리며 꼭짓점 댄스를 추는 남자가 생각난다면 정답이다. 1977년 영화 '토요일 밤의 열기(Saturday Night Fever)'에 등장하는 장면으로 오늘날까지도 많은 대중가요와 영상 매체에 레퍼런스가 되는 요소들이다.
펑크와 디스코는 다른 전자 음악, 댄스 음악에 비해 상당히 오래된 역사를 갖고 있다. 또한 당시의 사회 분위기와 문화상에 강한 영향을 받은 장르인 만큼 설명해야 할 부분들이 많다. 지루할 수 있지만 알쓸신잡 보는 느낌으로 편안히 읽어줬으면 한다.
펑크의 시작과 유행
펑크(Funk)는 1960년대 중반 흑인 음악인 재즈, 소울, 리듬 앤 블루스(R&B)의 요소를 혼합하여 리드미컬하고 춤추기 쉬운 새로운 형태의 음악을 만들면서 흑인 사회에서 유행하던 장르다. 창시자는 제임스 브라운으로 기존 소울이란 장르를 완성시킴과 동시에 '모든 척도의 첫 박자를 크게 강조하여 다운비트를 강조하는 시그니처 그루브'라는 펑크 특유의 리듬감을 개발하고, 모든 베이스라인, 드럼 패턴, 기타 리프에 스윙 16분 음표의 음과 싱코페이션을 공식화했다.
제임스 브라운의 1965년 곡 'Papa's Got A Brand New Bag Pt.1'가 빌보드 차트를 휩쓸면서 펑크의 시대가 도래하기 시작했다. 그 외에도 윌슨 피켓, 슬라이 앤 더 패밀리 스톤, 더 템테이션즈 등 흑인 아티스트들이 펑크 음악을 연달아 히트시키면서 1970년대는 최고의 전성기를 맞게 되었다.
디스코의 등장
70년대 펑크의 유행과 함께 파생 음악 장르인 디스코도 대세를 이루게 되었다. 점차 펑크 음악의 비트가 빨라지고 경쾌한 리듬감을 보이면서 펑크의 범주에서 벗어나 새로운 장르로 자리 잡게 되었다.
1960년대 후반 미국은 영국에서 넘어온 네 명의 청년 '비틀스'를 시작으로 이후 롤링 스톤즈, 더 킹크스와 같은 영국 출신 록 밴드들이 등장하여 미국 대중문화를 흔들기 시작했다. 폐쇄적이고 강압적인 포크 음악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몽환적인 느낌의 록 음악이 대세를 이루면서 점차 대중들이 다른 문화와 하위문화를 개방적으로 받아들이는 사회적 분위기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이러한 개방적인 분위기 속에서 보다 쾌락적이고 신나는 댄스 음악을 선호하는 커뮤니티에서 디스코 음악을 유행시켰다. 당시 대세였던 록 음악과 댄스 음악 멸시에 대한 반작용으로 뉴욕과 필라델피아를 기반으로 디스코 커뮤니티가 형성되었다. 이후 디스코는 언더그라운드 씬을 넘어 1977년에 개봉한 영화 '토요일 밤의 열기(Saturday Night Fever)'가 대히트를 기록하면서 70년대를 대표하는 또 하나의 대세 장르로 발전하게 된다.
디스코의 갑작스러운 추락, "디스코 폭파의 밤"
1970년대 영원할 것 같았던 디스코의 열풍은 "디스코 폭파의 밤" 사건으로 인해 급격히 위축되고 말았다. 70년대 후반은 말 그대로 디스코가 '원톱'이었다. 가볍게 춤추기 쉬운 댄스 음악이었기 때문에 대중들에게 다소 진중한 분위기의 록 음악보다 많이 소비되어왔고 작법도 상당히 단순했기 때문에 여러 디스코 음악을 양산할 수 있었다. 이러한 점 때문에 당시 대중들인 점차 퀄리티가 떨어져 가는 디스코 음악에 질려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또한 디스코의 유행으로 인해 음악 라디오 방송국들은 록 음악보다 디스코에 많은 비중을 둘 수밖에 없었고 여러 록 음악 라디오 DJ들이 잘리는 상황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이번에 소개할 '사건'의 당사자이자 시카고 라디오 DJ인 '스티브 달'도 이들 중 하나였다.
그는 디스코 음악을 엿 먹일 심산으로 시카고 화이트삭스 구단과 함께 '디스코 반대 운동' 캠페인을 열게 되었다. 1979년 7월 12일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와의 더블헤더 경기에서 안 듣는 디스코 음반을 가져오면 티켓값을 할인해준다고 하면서 관객들의 디스크 음반들을 모았다. 그런 다음 첫 번째 경기가 끝나고 두 번째 경기 시작 직전에 디스크 음반들을 폭약으로 터뜨리면서 관중들을 동요시켰다. 그런데 여기서 수천 명의 관중들이 "Disco Sucks!"를 외치면서 그라운드에 난입하기 시작했고, 주체할 수 없을 만큼 폭동이 심해지자 결국 경기가 중단되기에 이른다.
이는 어떠한 정치적, 사회적 이슈에 대한 폭동이 아니라 단순히 음악 장르에 대한 혐오로 인해 발생한 사건이었고, 당시 폭동의 현장이 TV 전파를 타게 되면서 디스코는 의도치 않은 '확인사살'을 당해버린다. 그리고 대척점에 있었던 록 음악은 힙합과 EDM 등장 이전까지 주류 음악의 입지를 굳건히 다질 수 있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스코는 살아 있다. Post Disco.
'그 사건'으로 인해 디스코의 위상은 확실히 많이 추락하긴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스코는 다양한 방향으로 발전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포스트 디스코' 시대가 찾아온 것이다.
80년대 디스코는 영국의 신스팝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기존의 펑크 드럼과 악기에서 벗어나 신디사이저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또한 현악기 세션을 과감하게 제거하고 재즈, 소울, 펑크의 리듬과 그루브를 살리는 방향으로 바뀌게 되었다. 여기에 비교적 느린 BPM에 펑키한 리듬감의 '부기(Boogie)'도 성행하게 된다. 또한 시카고 DJ 프랭키 너클즈를 중심으로 디스코를 변형하여 '하우스'라는 음악을 창조해내기도 했다. (하우스 편 참고) 한편 이탈리아에선 '이탈로 디스코'라는 이름으로 독자적으로 발전하여, 나중에 '하이에너지(Hi-NRG)', '유로비트' 등으로 발전한다.
90년대 이후 디스코는 '레트로 열풍'으로 인해 꾸준히 재조명받고 있다. 다프트 펑크 (Daft Punk), 퍼플 디스코 머신 (Purple Disco Machine)과 같은 전자 음악 아티스트들이 샘플링과 디스코 질감의 일렉트릭 신디사이저 베이스를 활용하여 '누 디스코 (Nu DIsco)'로 발전시키고 있다.
마치며
'옛 것이 좋은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오래된 음악이라고 하지만 지금 들어도 질리지 않고 오히려 새로운 느낌을 주는 것이 디스코다. 근래 BTS, 도자 캣과 같은 여러 팝 아티스트들이 레트로 열풍에 걸맞게 디스코를 시도하고 있는데 정형화된 대중 음악 공식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은 것 같아 또 다른 재미를 준다. 여러분도 디스코의 매력에 푹 빠져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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